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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이라는 말은 『큰사전』에 의하면 물을 대고 벼를 심기 위하여 만든 땅을 이르며 바닥이 판판하고 가를 흙으로 둘러막고 물 들어올 데와 물 나갈 데를 만든다고 하였다. 즉 두렁(두둑)으로 둘러막은 칸막이 땅에 물을 채우기 위하여 물꼬를 통하여 물이 들어가게 하고 또 한쪽으로 물이 나가게도 한다. 막은 물꼬를 열어 놓는 것을 물꼬를 튼다고 하며 돌보아 주는 것을 물꼬 본다고 한다. 두렁으로 둘린 논 땅 하나를 면적과 관계없이 한 배미라고 부르는데 구획(區劃)을 뜻하는 것이다. 배미의 취음한자로는 '야미(夜味)'라고 썼다.

물이 늘 있는 논은 무논 또는 진논(습답)이라고 부르고, 조금만 가면 물이 곧 마르는 것을 건답 또는 보리논이라 하였는데 보리논은 앞그루가 보리인 경우에 잘 쓰인다. 골짜기 논은 구레논, 갯벌에 만든 것을 갯논, 저수용으로 쓰는 논을 물잡이논이라 한다. 또 수원(水源)이나 물줄이 없어 비가 많이 와야만 모를 낼 수 있는 논을봉천(奉天)지기, 천둥지기, 또는 하늘바라기라 하는데 수리가 있는 논은 몽리(蒙利)답이라고 부른다. 논 안에 샘이 솟는 논을 고래논이라 한다.

논의 흙을 써레로 쓸고 나래로 골라 부드럽고 고르게 하는 것을 삶는다고 하는데 이 '쌂이'에는 건삶이와 무삶이가 있다. 이 두 가지 삶이는 못자리를 따로 만들지 않고 처음 삶은 논에 볍씨를 뿌리는 소위 직파법(直播法)이다. 건삶이는 수근(水根)이 좋지 않거나 가물어 논에 물을 싣지 못할 때 밭벼와 같이 마른 논에 볍씨를 파종하였다가 장마가 들어 물이 채워진 다음에는 보통 논벼와 같이 재배하는 것이다. 무삶이는 물이 채워진 논에 볍씨를 직파하는 것으로 현재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식으로 수도를 재배한다. 건삶이는 소위 건답직파이며 조선시대 초기까지도 무삶이와 같이 관행되었는데 점차로 모내기법으로 이행하여 조선시대 후반기 이후로는 이것만이 실시되어 왔다. 모내기법은 묘종법(苗種法)이라고도 하여 논 속에 따로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치고(뿌리고) 싹을 티워 모를 키웟다가 적당히 자라면 모를 쩌서(뽑아서) 앙군다(묶는다).

이 볏모 묶음을 모춤이라 하는데 이 모춤의 1/3을 목가새라 한다. 못자리에서 나온 모춤은 본논에 옮겨 모내기에서 논바닥에 나누어 꽂게 된다.

논이라는 한글글자가 처음 나타나기는 『훈민정음』용자례(用字例)에 논은 수전(水田)이라고 한 것에서 볼 수 있는데 논이라는 말은 논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생긴 것일지 모른다. 논이라는 글자는 한글창제시에 나온 것이지만 그 이전에는 한자로 수전(水田) 또는 답(沓)자로 표기되었음은 물론인데 수전(水田)보다는 답(沓)이 더 많이 그리고 매우 오래 전부터 쓰여 왔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 글자는 한토에서 창제된 한자로 水(물수)자와 田(밭전)자가 합자된 것이다. 답(沓)이라는 한제(韓製)한자는 이미 신라 진흥왕의 창녕(昌寧) 순수비(561년 건립), 일본 정창원(正倉院) 소장인 「신라촌락문서」(755), 곡성 대안사(大安寺)의 적인(寂忍) 선사비(872) 등에 나타나 있을 정도이다.

원래 田(전)이라는 한자는 밭전, 논전으로 읽어 논밭을 통칭하는 것인데 이를 구체적으로 나누자면 화전[火田], 백전[白田](또는 한전[旱田]), 수전[水田] 등이다. 그런데 한토에서는 논을 지칭하는 데 수전의 합자인 답을 창제하여 지금까지 써 오고 있으며 田(전)자는 대개 밭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밭전'자는 논을 뜻하게 되었고 밭을 말할 때에는 火(불화)와 田(밭전)의 합자인 畑(화전전)자 등을 써 오고 있다. 하여튼 답(沓)자는 6C 이전부터 지금까지 금석문이나 공문서에서까지 꾸준히 사용되어 온 만큼 이 글자가 들어간 숙어도 많이 생겼다. 답(沓)자가 앞에 들어간 용어로는 답토[畓土], 답주[畓主], 답농[畓農], 답곡[畓穀](벼), 답결[畓結](논에 대한 구실), 답권[畓券](논문서) 등을 들 수 있고, 답(沓)자가 뒤에 들어간 말로는 번답[反畓](밭을 논으로 변경함), 번답[飜畓](과 같은 뜻), 봉답[奉畓](봉천답, 천둥지기), 보답[洑畓](보를 통하여 물을 끄는 논), 언답[堰畓](저수지에서 물을 끄는 논), 종답[宗畓](종중에서 소유하는 논), 작답[作畓], 기답[起畓](땅을 일구어 논을 만듦), 위답[位畓](수확한 것을 향제[享祭]에 쓰기 위하여 설정한 논) 등이 있다. 또 논의 모양에 따라 방답[方畓], 직답[直畓], 제답[梯畓], 규답[圭畓] 등으로 나누고 소속에 따라 송답[公畓], 민답[民畓], 동답[洞畓], 경답[京畓](서울 사람 소유로 시골에 있는 논) 등으로 구별하며 기타 동답(바다에 둑을 쌓고 푼 논), 마위답[馬位畓](말 먹이로 쓸 곡식을 심는 논), 목답[牧畓](목자의 식량용인 논) 등이 있다. 묘지기나 마름의 보수로 부쳐 먹는 논을 '사래논'이라 하는데 묘위답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사래란 말은 이랑의 옛말로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하노"라는 율곡의 노래가 있다. '사래질'이라 하면 키로 곡식을 선별하는 일을 뜻한다. 논 한 마지기의 값을 정하여 모내기로부터 마지막 김매기까지의 일을 해 주기로 하고 쓰는 논을 고지논이라 한다. 집터에 바로 붙어 있는 논을 텃논이라 부르고 그러한 밭은 텃밭 또는 터앝이라 한다.

민간에서 어림으로 논의 면적을 따지는데 '마지기'라는 척도가 있다. 마지기는 말지기에서 온 것으로 한자로는 두락(斗落)이라고 쓴다. 즉 논 한 마지기라 하면 볍씨 한 말을 뿌릴 만한 논의 넓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어 1마지기가 200평 내외(6~7아르)인 경우와 300평(10아르)인 경우가 있는데 전자인 경우도 150~180평의 범위였다. 또 비옥도에 따라 벼 1섬을 수확하는 것을 대석(對石)지기, 즉 1마지기에서 1섬 소출을 얻는 것이고 벼 2섬으 거두어 들인다면 양석(兩石)지기라 한다. 따라서 1.5아르(약 2마지기)에서는 벼 4섬을 수확하였다면 양석지기로서 약 2섬의 현미를 얻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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